Siddhasana
싣다 Siddha는 순결하고, 성스러움을 지니고, 싣 디 스 siddhis 즉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반신적인 존재를 뜻한다. 또한 싣다 Siddha는 영감을 얻은 현인,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 즉 예언자를 뜻하기도 한다. 싣다 Siddha가 말하기를 니야마 niyama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이고, 야마 Yama 중에서는 절제된 식이요법이, 아사나 중에서는 싣다 사나 Siddhasana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840만 가지의 아사나 중에서, 수행자는 늘 싣다 사나를 수행해야 한다. 이는 72 정화한다(난데 NAIS는 신경 에너지가 통과하는 우리 인체 내의 통로이다.). "예술만 Atman을 명상하고, 절제된 식이요법을 하는 요기가 싣다 사나를 12년간 실시하는, 요가 싣다 siddhi를 이루게 될 것이다(예술만은 절대의 자아 즉 최상의 영혼이다. 싣 디 스 siddis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싣다 사나 가 완성되면, 기쁨을 주는 운만이 상태 Unman Avast ha(사마디)가 힘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따를 것이다."정신에는 네 가지 상태가 있다. 그것들은 깨어 있는 상태, 꿈꾸는 상태, 잠자는 상태 그리고 투리야 Turiya라고 불리는 상태이다. "첫 번째의 깨어있는 상태는, 세속의 모든 사물을 의식하고 그것들을 즐기는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는 육체가 정상을 지배하는, 즉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받기 쉽다. 두 번째의 꿈꾸는 상태는 정교 섬세한 것들을 즐기는 데 깨어 있을 때 체험한 것들로부터 생기는 것이지만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형성한다. 여기에서는 정신은 육체의 속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이다.
세 번째는 완전한 수면의 상태인데 꿈도 욕망도 가지지 않는다. 이를 수 숩 티 susupti라고 한다. 그 안에서 영혼은 일시적으로 브라만과 하나가 되고 지상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깊은 잠에서 우리는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고, 정신의 번민에서 해방된다. ··· 그러나 이것은(즉, 영원히 꿈이 없는 수면) 완전한 무의식과 혼돈되기 쉽다.
최고의 것은 꿈이 없는 수면이 아닌 다른, 즉 정신의 네 번째 상태로 순수한 직관으로 인식하는 것인데, 대상(사물)의 내적·외적 인식이 없는 상태이다. 이 깊은 수변 상태에서는, 정신(혼)은 브라만과의 절대적 결합으로 감각적이고 변할 수 있는 현상 세계를 훨씬 넘어선 영역에 머문다. 툴 리야 상태는 깊은 수면 상태에서 강조된 부정적인 면을 긍정적인 면으로 끌어낸다." (라다크리쉬나 Radhakrishna의 「우파니샤드 철학」에서)이 네 번째 상태를 「만두 키야 우파니샤드 Mandukya Upanishad」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자가 이르기를, 이 네 번째의 상태는 주관적인 경험도 객관적인 경험도 아니며 또 그 중간에 위치한 경험도 아니다. 의식도 무의식도 아닌 부정적인 상태도 아니다. 감각 기능을 초월하고, 이해와 표현을 초월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순수하고, 유일한 의식(인식)이며, 그 안에서는 세상과 복합적인 것들에 대한 모든 인식(앎)이 완전히 무시된다. 그것은 지고의 선(善)이고 두 번째가 없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자이다. 오직 홀로 존재한다."
"라자 요가 Raja - Yoga, 사마디 Samadhi, 운 많이 Unman, 마노 많이 Mano - ma Ni, 불멸 Immortality, 집중 Concentration, 순 야 순아(Sunyasunya, 비어 있으나 빈 것이 아닌), 파라나 파다(Parma Pad, 지고의 상태), 아마 나스카(Amanaska, 마음 작용의 지면), 아드바이타(Advaita, 이원성을 가고 있지 않음), 나라 사람 바(Niralamba, 지지자가 없는), 너란 자나(Niranjana, 순수), 지반 묵 티(Jivanmukti, 해탈의 상태), 사해 바스타(Sahajavastha, 자연적인 상태) 그리고 툴이야(Turiya, 글자 그대로 네 번째), 이 모든 것이 같은 것을 뜻한다. 소금 한 알을 물속에 던져 넣으면 물에 용해되어 물과 하나의 상태가 되듯이 마음과 예술만 Atman의 결합이 사마디 Saadi다. 프라나 Prana와 마나스(Manas 될 때, 즉 그때 일어나는 조화의 상태를 사마디라고 한다(「하타 요가 프라디피카」 4장 3~6절)." 싣다 Siddha와 같은 아사나가 없고, 캐 발라 Dev ala 같은 쿰바카가 없고, 케차리 Khechari 같은 무드라도, 나다 Nada 같은 라냐(lay, 마음의 집중)도 없다.
케찰이 무드라 Khechari Mudra는 말 그대로 우주를 돌아다니는 뜻으로 이것은 「게란다 상히타」 3장 25~28절에서 설명되어 있다. "혀의 아래 힘줄을 잘라서, 혀를 계속 움직여서 신선한 버터에 문지르고, 철로 만든 기구를 사용해서 혀를 밖으로 잡아당겨 늘인다. 이것을 항상 수행함으로써, 혀는 길어지고, 그것이 눈썹 사이에 닿으면, 케차리 Khechari는 완성된다. 그때(혀가 길어진 상태), 혀를 구개에 닿을 수 있도록 위, 뒤로 돌리는 연습을 한다. 중국에는 혀가 입 안의 콧구멍까지 이르게 된다. 혀로 콧구멍을 막고(그리하여 숨은 멈춰지고), 시선은 양미간을 응시한다. 이것을 케찰이라고 한다. 이 수행으로서 실신, 배고픔, 갈증, 게으름이 사라진다. 질병, 부패, 죽음도 없어진다. 몸이 신성해진다."
나다 Nada는 내적 신비의 소리다. 네 번째 장의 79 - 101절에서 다양한 직유를 들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요가는 마음의 탈선을 통제(제어)하는 것에 관한 것으로 정의된다. 마음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대상에 몰입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다음 점진적으로 그 대상에서 분리되어 자기 내면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요기가 내적 신비한(영적인) 소리에 몰입해야 하는 단계이다. "마음은 뱀과 같아, 나 다를 들음으로써 모든 불안을 잊어버리고, 어느 곳으로도 도망가지 않는다." 점진적으로 나다가 잠재하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난다는 것과 함께하게 된다. "숲을 태우는 불이 맞불에 의해 꺼지는 것처럼 마음도 이와 같아 나 다를 활용함으로써 가라앉게 된다."
방 법
- 정면으로 두 다리를 쭉 뻗고 바닥에 앉는다(그림 77).
- 왼쪽 무릎을 구부린다. 왼발을 잡아당겨 발뒤꿈치를 회음부에 닿게 하고, 발바닥이 오른쪽 넓적다리에 닿게 한다.
- 이제 오른쪽 무릎을 굽혀, 오른쪽 발뒤꿈치를 치골에 닿게 하여 오른발을 왼쪽 발목 위에 놓는다.
- 오른쪽 발바닥을 넓적다리와 종아리 사이에 놓는다.
- 몸을 발뒤꿈치 위에 얹지 않는다.
-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손등을 무릎 위에 놓고,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한다.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나머지 손가락은 쭉 편다(그림 84).
- 등, 목 그리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시선은 코끝을 응시하듯이 내면을 향하게 하여 가능한 한 오래 이 자세를 유지한다.
- 다리를 풀고, 얼마간 피롤로 푼 다음 발을 바꾸어서 다시 동일한 시간 동안 되풀이한다. 먼저 오른쪽 발뒤꿈치를 회음부에 닿게 하고, 위에서 설명했듯이 오른쪽 발목 위에 왼발을 놓는다.
★☆효 과☆★
이 자세는 치골 부위를 건강하게 유지한다. 파더니 아사나(그림 104) 처처럼, 이것은 가장 심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아사나 중의 하나다. 앉은 자세에서 육체는 휴식을 취하며, 가부좌를 틀고 등을 곧추세운 자세에서 마음은 날카롭고 성성(惺惺)하게 살아 있다. 이 아사나는 프라나야마의 수행과 명상을 하는 데 권장된다. 순전히 육체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이 아사나는 무릎과 발목의 경직을 다스려 주는 데 좋다. 허리 부위와 복부에 피가 잘 흐르고 이것은 척추의 밑부분과 복부 기관을 좋은 상태로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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