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반대, 즉 잘한다고 반대, 붇다 아나 반대, 물라 반대는 뒤에서 설명된 것처럼 쿰바카(Kumbhakas, 완전히 들이쉰 후에 호흡을 보유하거나 완전히 내뱉고 난 후 호흡을 억제하는 것) 상태에서 관찰돼야 한다. 반대 band has는 쿰바카를 행하는 동안 닫혀 있어야 하는 안전밸브와 같다.
들숨 P ur aka와 날숨 rechaka의 수행은 안타라 쿰바카(antarakumbhaka, 숨을 들이마시고 난 뒤의 호흡 보유)를 배우기 전에 반드시 완전히 체득해야 한다.
바야 쿰바카(Baht kumbhaka, 숨을 내쉰 뒤의 억제)는 안타라 쿰바카가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시도해서는 안 된다.
쿰바카 수행하는 동안 호흡 보유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 횡격막과 복부 조직을 죄었다 늦추었다 할 뿐만 아니라 공기를 빨아들이는 경향도 있다. 이것은 무의식적이며 무 의도적이다. 이런 경향을 피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각 들숨과 날숨 후에 호흡을 보유 kumbhaka 하기가 힘들며 몇 사이클(순환)의 심호흡을 하고 나서 쿰바를 한다. 예를 들면, 세 번 심호흡하고 한 번 쿰바카를 한다. 그리고 다시 세 번 심호흡하고 두 번째 쿰바카를 한다. 등등··· ···.
만약 들숨 또는 날숨의 리듬이 쿰바카(지식)로 흐트러진다면 쿰바카의 지속 기간을 줄인다.
눈과 귀의 병(녹내장이나 귀의 고름 같은)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지식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변비가 쿰바카 수행의 초기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질 것이다.
1분 동안의 정상적 호흡수는 15회이다. 그러나 몸이 소화불량, 열감기나 공포, 화, 욕망과 같은 감정에 의해 나빠질 때 이 숫자는 올라간다. 정상적 안녕 호흡수는 24시간에 21,600번을 들이쉬고 내쉰다. 요가 수행자의 일생은 날짜의 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호흡의 수에 의해 측정한다. 프라다야마에서 호흡이 길어지기 때문에 이의 수행은 수명을 연장해 준다.
프라나야마의 지속적 수행은 수행자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흡연, 음주, 성적 탐닉과 같은 세속적 쾌락에 대한 감각의 갈망을 상당히 감소시킬 것이다.
프라나 야마를 행하는 동안 감각 기능은 내면으로 향하고 쿰바카 침묵의 순간에 수행자는 내부의 외침을 듣는다. '내면을 봐라! 모든 행복의 근원은 내면에 있어!' 이것은 또한 그로 하여금 요가의 다음 단계인 감각 기능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프락치와 하라 단계를 준비케 한다.
프라다 야마를 수행하는 동안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는 신성한 단어나 명호를 속으로 반복 Japa 함으로 알 수 있다. 이런 신성한 단어나 명호의 반복은 요가 수행자의 마음이라는 뜰에 심어진 씨앗 BIA이다. 이 씨앗은 자라서 그를 요가의 여섯 번째 단계인 집중 그리고 디아나 dhyana에 적합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사마디 samadhi라고 하는 열매를 맺는데 그곳에서 완전한 의식과 최상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고, 요가 수행자는 우주의 창조자와 합일되고 그가 결코 표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숨길 수도 없는 환희심을 느낀다. 말은 경험을 적절하게 전달할 수 없고 마음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한다. 그것은 모든 이해를 뛰어넘은 평온, 그 평온의 느낌인 것이다.